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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굿바이 안양의 영원한 캡틴, 양희종

by basketball.romantist 202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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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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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수. 모든 스포츠 종목을 막론하고 수비 포지션은 공격수에 비해 주목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화려함과 테크니션, 다득점이 곧 승리로 이어지는 스포츠 세계에선 대중들은 수비보다 공격에 많은 시선과 비중을 두기 마련이다. FA 시장에서도 이러한 진리는 큰 변함이 없다.  

포지션 특성상 관심도는 낮은데, 책임감은 또 산더미처럼 어마어마하다. 대중적인 스포츠, 축구만 살펴봐도 단 한 번의 볼 컨트롤 미스, 수비 실수는 실점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물론 축구와 농구를 비교하기 어렵지만 여러 상황과 관계를 놓고 따져봤을 때, 관중들은 치명적인 수비 실수에 비난의 화살을 쏴대는 것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아마추어 시절부터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헌신했고, 소속팀 안양을 위해 희생했던 영원한 캡틴 11번 양희종이 지난 26일, 원주 DB와의 경기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가졌다. 

양희종은 연세대 출신으로 2007년 KBL 신인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안양 KT&G의 부름을 받았다. 당시 양희종은 3순위라는 순번에 떨떠름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었으나 유도훈 감독은 본인의 순번이 1순위였어도 너를 뽑았다며 그의 기량을 높이 샀다.

당시 드래프트는 현재까지도 최고의 드래프트라고 평가받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순위로는 매직 키드 김태술이 있었고 10순위로는 이번 시즌까지도 코어로 맹활약하고 있는 함지훈이 있다. 

당연하게도(?) 각 구단들은 어쩌면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할 수 있던 모든 선수에게 조금의 기대치를 가졌고 양희종도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시즌 54경기 전 경기에 나서며 많은 기회를 누렸다. 

필자 기억으로 당시엔 외국 선수 2명이 뛰었던 시절로 기억한다. KBL 많은 팀들을 거쳐갔던 득점 머신 마퀸 챈들러와 TJ 커밍스가 주 득점원으로 활약했기에 루키 양희종이 공격에서 다양한 옵션을 가져가기엔 사실 많은 제약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역할은 한정적이며 분명했다. 동료들 곁에서 패기 넘치는 플레이와 파워풀한 수비로 팀에 일조하자. 

종종 너무 터프한 수비로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현재까지도 그의 이러한 파워풀함, 집념, 사냥개를 연상케 하는 끈질김과 뛰어난 승부욕은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사진 출처 = KBL

양희종이 사시사철 푸른 잎과 변하지 않는 절개로 한자리를 지키는 소나무처럼 안양을 수호하는 사이 구단에는 유도훈, 이상범, 이동남, 전창진, 김승기, 김상식으로 총 6명의 사령탑이 오갔다.  

그렇게 보면 양희종은 팀이 힘들고 어려울 때, 행복했을 때, 모든 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KGC 구단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준 셈이다. 

일부 팬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를 대표하는 별명은 양무록이다. 수비 5걸을 수여받을 정도로 수비력과 팀 공헌도는 타의 추종에 불허하지만 반대로 공격 가담 능력이 아쉽고 전반적인 스텟이 미미하여 붙은 별명이다. 

그렇다고 양희종이 전형적인 수비형 선수, 블루워커인가? 또 그건 아니었다. 많은 감독들이 중요한 경기에서는 미친 선수가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데, 양희종이 딱 플레이오프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그런 유형의 선수였다.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DB 팬인 필자는 당시 야간자율학습이라고 불리었던 소위 야자를 째고 챔피언결정전 6차전을 직관했다. 많은 점수 차로 이기고 있었기에 7차전을 예상했지만 끝내 필자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아직도 오른쪽 45도에서 양희종이 드리블로 윤호영을 제치고 던졌던 오른쪽 45도 뱅크슛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경기도 졌고, 그다음 날 학교 가서 선생님에게 무진장 혼났던 기억이 있다. 그 위닝샷을 기점으로 KGC는 구단 첫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했고 동시에 승승장구, 빠르게 명문 구단으로 자리 잡았다. 커리가 빙의된 줄 알았던 서울 삼성과의 챔피언 결정전 3점슛 8개도 대단했다. 

이처럼 맘만 먹으면 공격에서도 맹위를 떨칠 수 있는 선수였지만 워낙 수비와 허슬 플레이, 리더십이 강렬했던 탓에 그러한 본능이 더욱 가려졌다고 생각한다. 

우승을 못하면 은퇴를 미뤄야 하나?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던 양희종. 대선배의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는지, 후배 선수들과 동료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DB를 제압하고 우승 축포까지 쏘는 겹경사를 누렸다. 그리고 팬들은 안양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우며 현장을 함께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냥 지나쳐갈 수 있는 글이지만 앞으로도 양희종 선수, 제2의 인생을 응원하겠습니다. 정규리그, EASL, 내친김에 챔결까지 트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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